어른들을 위한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는 흔히 어린이용 만화로 알려져 있지만, 매년 개봉되는 극장판은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큰 재미를 선사해주는 높은 퀄리티로 유명하다. 어른들에게도 평가가 좋은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은 여러 작품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은 당연 '어른 제국의 역습'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중에서 명작일 뿐 아니라,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 전체와 비교해봐도 손꼽히는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관객들로 하여금 러닝타임 내내 몰입하게 만드는 치밀하고 탄탄한 구성과 아이들에게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마음 깊은 울림을 주는 훌륭한 연출로 매우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또한 새시대의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시대를 지나 새로운 시대인 디지털 시대로 나아가는 때에 개봉한 작품이라, 그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주제의식 또한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의 빌런이라 할 수 있는 켄은 새로운 세상을 부정하고 자신의 사상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모아 구시대풍으로 꾸민 마을을 만들어 계속 구시대 속에서 살아가려 한다. 이에 반해 주인공인 짱구는 앞으로 새 시대를 열어나갈 어린이들의 대표 격으로서, 켄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여 승리를 쟁취한다. 켄과 같이 과거에 연연하는 구세대들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 짱구와 같은 신세대들의 앞길을 막아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짱구 아빠의 회상 장면.
이 작품이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하는데 가장 크게 일조한 장면은 바로 짱구 아빠의 회상 씬이다. 어른들을 어린 아이로 만드는 가스에 취한 짱구 아빠, 즉 신형만은 어렸을 적 부모님과 같이 방문하였던 만국박람회 현장 한가운데에 있다. 짱구와 같은 나이대의 어렸을 적 모습으로 돌아간 신형만은 자신의 부모들에게 무엇인가 불만스러운 듯 투정을 부리고 있다. 그러던 와중 신형만과 봉미선을 찾고 있던 짱구, 짱아와 맞닥뜨리게 되고, 자신의 아빠를 알아본 짱구에게 붙들리지만 신형만은 자신의 자식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떼어내려 할 뿐이다. 짱구와 한창 실랑이를 벌이던 어린 신형만은 자신의 부모님들이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없이 떠나가려는 것을 보고 놓치지 않으려 따라가려고 하지만 자신의 몸을 붙잡고 늘어지는 짱구에 의해 넘어져버리게 된다. 이때 신형만이 신고 있던 신발이 벗겨지게 되고 짱구는 혹시나 하는 절박한 마음에 그 냄새나는 신발을 신형만의 코에 가져다 댄다.
이내 신형만의 기억이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한다. 고향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모는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곤충채집을 다니던 신형만은, 좀 더 성장한 이후 학교에 입학하고 첫사랑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해 겨울 첫사랑은 마음 아프게 끝나버리고 시간이 지나 학교를 졸업하게 된 신형만은 서울로 상경하여 취업을 한다. 정신없이 신입사원 시절을 보내던 신형만은 벚꽃이 흩날리던 봄날, 짱구 엄마인 봉미선과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두 사람 간의 사랑의 결실로서 짱구와 짱아를 낳는다. 어느덧 어엿한 가장이 된 신형만은 여름의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묵묵히 출근길에 오른다.
신형만이 신고 있던 신발에서 나는 발냄새는 그동안 신형만이 한 사람의 남편으로서,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즉 가장으로서 걸어왔던 길을 대변해주는 증거였던 것이다.
어린 신형만의 눈에는 웅장하고 거대해보였던 만국박람회 현장은 사실 조악하고 작은 세트장이었다. 신형만은 어린 시절로 완전하게 돌아갔던 것이 아니라 단지 최면 가스에 취해 그 조악한 세트장에서 과거의 기억 속에 빠져 방황하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기억이 완전히 돌아온 신형만은 자신의 아이들을 끌어안고서 이제야 자신을 알아보겠냐며 묻는 짱구의 말에도 차마 대답하지 못한 채 말없이 숨죽여 흐느낀다.
이 장면은 작품 최고의 명장면으로서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신형만이라는 평가 까지 듣게 만들었다. 일본과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한국과 같은 아시아의 어른들 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문화권의 어른들 조차도 이 장면에 깊게 공감해 눈물을 훔치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타공인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
이 작품은 일반 관객들 뿐만 아니라 업계 관계자나 평론가들에게도 역대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덕분에 점점 하락세를 걷고 있었던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시리즈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다시 그 인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짱구는 못말려가 장수한 만화이니 만큼, 극장판 역시 많은 수의 작품이 있고, 어른 제국의 역습만큼이나 좋은 작품들도 많다. 짱구는 못말려라는 만화에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는 분이라면 극장판도 한 편 한 편 즐겨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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