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을 잡는 군인, D.P.
헌병대에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특수한 보직이 있다. 바로 이 작품의 소재인 D.P.이다. D.P. 는 'Deserter Pursuit'의 줄임말이다. 'Deserter Pursuit'은 한국말로 직역하자면 바로 '탈영병 추적'이라는 뜻이다. 또 다른 말로는 군탈체포조, 사복 헌병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군인이지만 같은 나이대의 민간인들처럼 머리를 기르고 사복을 입은 채로 군부대의 안과 밖을 드나들며 탈영병을 추적한다.
군대라는 집단 내의 고질적인 부조리를 여과 없이 표현하다.
한국은 휴전 상태의 국가로, 이 땅에서 태어난 남자들은 모두 20세가 넘으면 신체검사를 받고, 군 복무에 적합한 자는 군인으로서 징집된다. 예로부터 한국 남자들에게 있어 군대는 이 땅에서 떳떳하게 살아가기 위해 무조건 통과해야 하는 하나의 관문이었다. 본인이 원했든지 원치 않았든지 간에 말이다. 혈기왕성한 20~30대의 젊은 남자들을 억지로 한 데 모아놓은 이 군대라는 집단 내에서는 당연하게도 수많은 갈등과 충돌이 발생해왔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적응하지 못한 자들은 부대원 모두가 잠이 든 깊은 새벽 남들 몰래 침상에서 빠져나와 군부대의 담벼락을 넘는 것이다.
국내에서 군대를 소재로 다룬 또 다른 유명 미디어가 있다. 바로 지상파에서 방영했던 '진짜 사나이'이다. 프로그램의 제목에서도 유추 할 수 있듯 '진짜 사나이'에서 표현되는 군부대와 군인들은 상당히 이상적이다. 출연진들과 현역 군인들은 함께 힘을 합쳐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서로 화기애애하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전우애를 다진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진짜 사나이'와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외국 기업인 넷플릭스를 통해 유통되는 이 작품은 그간 국내의 미디어에서 비춰졌던 군대의 그 밝고 이상적이기만 했던 이미지를 전면으로 부정한다. D.P. 에서는 그간 미디어에서 외면되어 왔던 군대의 어두운 면을 여과 없이 리얼하게 그려냈다. 너무 리얼하고 신랄하게 그렸던 나머지, 개중에는 자신의 겪었던 군생활이 떠올라 PTSD 증세를 일으켜 시청을 포기했다는 시청자도 나올 정도였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작품을 시청한 그날 밤 다시 현역병 시절로 돌아가는 꿈을 꾸었다는 피해사례(?)를 호소하는 경우도 많았다.
군생활 경험이 없는 미필자들과 군필자들 사이에선 이 작품에서 묘사되어진 부조리가 사실인가 아닌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또 병영 부조리가 상당히 심각했던 군세대의 군필자들과, 부조리가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 해소가 된 이후 군생활을 한 신세대의 군필자들 사이에서 그 묘사가 과장이 되었는지, 아닌지로 의견이 갈렸다. 유통사가 넷플릭스인 만큼 이 드라마를 시청한 외국인들의 숫자도 결코 적지 않은데, 한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들을 한국 군대에 보낼 수 없다며 울부짖는 K-POP 팬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이 한 데 모여 그 인종과 국적을 막론하고 자신들의 군대에서 겪었던 여러 병영 부조리에 대해 폭로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이렇게 그간 쉬쉬하며 묻어두었던 병영부조리를 신랄하게 표현한 내 이 작품은 그 소재만으로도 방영 직후 나라 전체를 뒤흔들어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절한 연출로 주제의식 뿐만 아니라 대중성과 재미도 잡다.
이 작품에선 매력있는 다양한 캐릭터들과 적절한 개그 요소, 군부대에만 국한되지 않고 도시나 휴양지 등 여러 밝은 배경 속에서도 이야기를 전개하는 등 때로는 밝고 코믹한 연출을 적절하게 섞어놓아 누구든지 재밌게 볼 수 있게끔 대중성 역시 확보하였다. 또 극 중 등장하는 탈영병들도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갖고 있어,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단순히 이슈성 높은 소재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의 완성도 역시 뛰어난 것이다. 이 작품은 인기에 힘입어 현재 시즌2 방영도 확정되었다. 그간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겪어왔지만 왠지 모르게 외면받아왔던 병영 부조리 문제가 이 작품의 영향으로 다시 한번 조명되고, 군장병들의 처우도 계속해서 개선되어 나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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