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돈가방을 손에 넣은 된 한 남자.

 

 

  미국 텍사스 주의 사막 한가운데서 저격총으로 야생 동물을 사냥 중이던 르웰린 모스는 사냥감을 쫓다 우연히 총격전이 벌어진 듯한 현장을 발견한다.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자동차 몇 대와 서로 총을 쏴댄 듯한 남자들의 시신 사이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던 르웰린은 현장의 유일한 생존자와 마주친다. 생존자 역시 여러 총상을 입고 기운이 다해가는 상태였다. 생존자는 르웰린에게 단지 물을 달라며 애원할 뿐이다. 르웰린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생존자더러 당신에게 줄 몰은 없다고 담담하게 말하고 그 자리에서 떠난다. 그러던 와중 르웰린의 시선에 나무 그늘 아래 누워있는 한 남자가 들어온다. 르웰린은 먼발치에 앉아서 그 남자를 지켜본다. 남자의 움직임이 전혀 없음을 확인한 르웰린은 그 남자에게 다가간다. 르웰린의 확신과 같이 남자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는 상태였고 그 옆에는 돈다발이 가득 든 가방이 있었다. 르웰린은 그 가방을 챙겨 들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르웰린은 집안 구석에 돈가방을 숨겨두고 아무 일도 없는 척 아내와 함께 티브이를 보다 침대로 들어간다. 그러나 낮에 있었던 일로 인해 르웰린은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결국 르웰린은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고 말통에 수돗물을 한가득 담아 차를 몰아 집을 나선다. 르웰린이 도착한 곳은 낮에 발견했던 총격 현장이다. 르웰린은 자신에게 물을 달라며 애원하던 생존자를 찾지만 생존자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이다. 시신을 담담하게 바라보던 르웰린은 순간 다른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 먼발치에 세워둔 자신의 차로 시선을 옮긴다. 르웰린 눈에 자신의 트럭을 어느샌가 정체모를 인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들은 르웰린의 트럭의 타이어를 숙련된 솜씨로 펑크 내고 있는 중이었다. 르웰린은 고민할 틈도 없이 무작정 도주하기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르웰린을 발견한 정체불명의 인물들은 르웰린에게 총을 쏴대며 뒤쫓는다.

 날이 밝을 때까지 앞만 보며 도망쳐 간신히 추격자들을 따돌리는 데 성공한 르웰린은 집으로 한참을 걸어서 돌아가 영문모를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내에게 아내의 어머니 집으로 피신해 있을 것을 권유한다. 그리고 홀로 돈가방을 챙겨 들고 자신을 쫓는 정체불명의 인물들을 따돌리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런 르웰린을 쫓는 희대의 사이코패스 살인마 안톤 쉬거.

 

 

 안톤 쉬거는 사람을 죽이는데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는 사이코패스 살인청부업자이다. 그에게 살인이란 단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마치 운전을 하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 듯, 당연한 일이라는 것처럼 담담한 얼굴로 살인을 저지른다. 자신을 체포했던 보안관을 목졸라 살해한 안톤 쉬거는 산소통으로 연결된 공기총을 들고 유유히 보안 관서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지나가던 자동차를 불러 세우고는 운전자를 거리낌 없이 살해하고 자동차를 탈취한 후 돈가방을 습득한 어떤 남자를 찾아내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세상은 많은 경험을 가진 현명한 노인들 조차 가늠할 수 없는 혼돈이다.

 

 

 미국의 유명 현대 문학가 중 한 명인 코맥 매카시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지대에 펼쳐진 사막을 배경으로 하여 적적하고 건조하지만 때로는 긴장감 넘치고 잔혹한 연출로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든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은, 아일랜드의 문학의 상징과도 같은 작가인 월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노인이란 살기 좋았던 구시대에서 살아온 인물로 자신의 기나긴 인생의 여정길을 보내오는 동안 쌓아온 지혜와 현명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은 그러한 노인이 살아가기엔 너무나 변화무쌍하고 잔혹하며 물질만능적 탐욕과 유혹이 넘친다. 노인은 결국 이러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실도피를 하며 도태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우연히 손에 넣은 돈가방을 들고 추격자에게 쫓기는 신세인 르웰린 모스와 그를 쫓는 추격자인 안톤 쉬거, 그리고 이들을 먼발치에서 뒤따라가며 수사를 진행하는 노년의 베테랑 보안관 에드 톰 벨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노인이란 보안관 벨을 뜻한다. 또한 물질적인 탐욕은 돈가방을 뺏기지 않으려 도주하는 르웰린을 가리키며, 그를 쫓는 안톤은 혼돈한 세상 그 자체를 의미한다. 얼핏 보기엔 작품의 내용과 상당히 괴리감이 있어 보이는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제목이지만, 그 속 뜻을 헤아리고 나면 제목 한 문장에 영화의 내용을 전부 담아낸 원작자의 재치와 센스에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과 내용 간의 상당한 괴리감으로 인해 수많은 관객들에게 혼란함을 준 문제작으로도 유명하다. 아무래도 국내에선 머나먼 타국인 아일랜드의 시인 월리엄 버틀러 예이츠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관객들이 많았을 테고, 제목 자체도 한국어로 번역되다 보니 영어 제목과는 또 다른 느낌을 풍기게 되어버린 탓이 크다. 개봉 당시 국내 인터넷 웹사이트 등지에선 극장에서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노인 복지 문제를 소재로 한 휴먼 감동 드라마인 줄 알고 관람하였다가 시종일관 이어지는 유혈이 낭자한 추격전에 당황하였다는 관객들의 피해 호소 글이 심심찮게 목격되기도 했다. 개봉 이후로도 국내의 유명 모 포탈 사이트에서는 개봉된 지 훨씬 이후인 시점임에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종종 실시간 이슈 검색어로 올라가는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케이블 채널에서 이 작품을 방영해줄 때마다 제목이 뜻하는 바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함을 참지 못한 시청자들이 포탈 사이트에 몰려와 검색을 해댔던 것이 그 이유이다.

 

 이러한 일화들에서 알 수 있듯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사전 지식 없이는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을 줄거리로 하고 있지만,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역대급 악역 캐릭터로 많은 관객들을 사로잡아 대중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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